모험러의 책방
어느 피로사회의 8월 본문
8월 10일. 충남 서산. 이모(23)씨는 아르바이트로 일하다 알게 된 피자 가게 사장 안모(37)씨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나체사진까지 찍혀 협박을 당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씨는 대학에 입학한 후 줄곧 아르바이트를 해왔으며, 몸이 불편한 아버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왔다고 한다. "나는 살기 위해서.. 지금도 이런 치욕적인 곳인데도 따라간다. ... 경찰아저씨, 이 사건을 파헤쳐주세요. ...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일이 나한테 일어났다. 친구들아 도와줘." 이씨가 남긴 유서다. 이씨는 눈도 못 감고 죽어 엄마가 눈을 감겨주었다고 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연구실장에 의하면 알바생들이 탈법적인 근로조건에 시달리고 이번 사태처럼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일을 당하는 사례가 자주 접수되고 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는 노동의 사각지대인 것이다.
8월 18일.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역사. 유모(39)씨는 남녀 승객 8명에게 공업용 커터칼을 휘둘러 중상을 입혔다. 유씨는 건설 노동 현장을 떠돌며 생활하는 일용직 노동자로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 지낸 지 10년이 넘었으며 최근 경기침체로 일감을 구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날 유씨는 일자리를 구하러 가는 길이었다.
8월 19일. 인천시 부평구. 김모(24)씨와 이모(25)씨는 길 가던 20대 여성 3명을 어깨가 부딪쳤다는 이유로 얼굴에 침을 뱉고 쇠파이프까지 가져와 여성들을 무차별 폭행했다. 폭행으로 여성 1명은 코뼈가 부러지고 이가 빠지는 중상을 입었다. 경찰은 김씨와 이씨가 일정한 직업이 없고 주거가 분명치 않다고 밝혔다.
8월 20일. 부산 강서구. 최모(46)씨는 아무런 이유 없이 길 가던 두 초등학생에게 미리 준비한 길이 30cm의 공구를 휘둘러 상해를 입혔다. 최씨는 경찰 조사에서 "요즘 되는 일도 없고 울분이 치솟아 갑자기 아이들을 때렸다"고 진술했다.
같은 날. 서울 광진구 중곡동. 서모(42)씨는 주부 이모(37)씨를 성폭행하려다 저항하자 살해했다. 다섯 살, 네 살짜리 자녀를 둔 이씨는 자녀를 유치원 차에 태워 보내고 귀가하다 화를 입었다. 가해자 서씨는 가족도 동료도 친구도 없었으며 늘 8평 남짓의 월세방에서 컴퓨터를 하며 홀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피해자 이씨의 남편은 아내가 그런 고통을 당하고 무서워하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게 너무 미안하다며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오열했다.
8월 21일. 수원시 장안구. 강모(39)씨는 주점 여주인을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치자 주인과 손님을 흉기로 찌르고 도망쳐 들어간 고아무개(65)씨 집에서도 흉기를 휘둘러 고씨를 숨지게 하고 그의 가족을 다치게 했다. 일용직 노동자인 강씨는 폭우가 내려 일거리가 없자 범행 당일 아침 혼자 술을 마셨다고 한다. 강씨는 어차피 사형을 받을 거니 그냥 구속하라며 영장 심사를 거부했다고 한다.
같은 날. 용인시 수지구. 50대 A씨 부부가 시장을 보고 귀가하다 신원을 알 수 없는 2인조 괴한에게 둔기로 폭행당했다. 현재 A씨는 머리를 둔기로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한다.
같은 날. 울산 중부. 이모(27)씨는 단골로 다니던 슈퍼마켓 여주인을 특별한 이유없이 흉기로 찔렀다. 주인은 단골손님 이씨가 여느 때처럼 과자를 사러 온 줄만 알았다고 한다. 이씨는 10년 전 부모가 이혼한 뒤부터 혼자 살아왔으며 친구도 없었다고 한다. 최종학력은 중학교 졸업이고 1년 전 잠시 대형할인마트에서 일한 것이 마지막 직업이다. 담당경찰관은 "전형적인 은둔형 인간의 범죄"라고 말했다.
8월 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기모(33)씨는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직장동료들과 행인을 상대로 흉기를 휘둘러 4명이 중상을 입었다. 김씨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와 같은 직장(신용평가사)에서 부팀장으로 일했으나 점차 실적이 떨어지면서 상사와 동료로부터 "제 앞가림도 못한다" "월급만 많이 받아간다" 등의 비난에 시달리다 2010년 10월 퇴사했다고 한다. 그 후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카드빚을 지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김씨는 월 20만원의 신림동 고시원에서 살면서 자신을 험담한 직장동료를 떠올릴 때마다 살인 충동을 느껴 칼을 갈았다고 한다. 경찰에 체포될 당시 김씨 수중에 있던 것은 현금 200원과 4천원이 충전된 교통카드가 전부였다.
또한,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하루 자살 사망자는 42.6명으로(2010년 기준), 폭염으로 뜨거웠던 올해 8월,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많은 넋이 우리는 알 수 없는 사연을 안고 차마 남에게 폭력을 가하지는 못하고 자기 자신의 생명을 끊는 것으로 삶을 마감했을 것이다.
오늘은 처서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제법 서늘하다.
12/08/23
비가 내리고,
바람이 제법 서늘하다.
1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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