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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모험러
새들도 춥지 않을까
싶은 추위가 주중 내내 계속되었다

서울의 그늘진 추위는 유독 매섭지 않은가
하고 한 사람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러자 서울 추위가 서럽다며
내가 어쩌다가 따뜻한 고향을 두고 여기까지 흘러왔나
하는 하드보일드한 감상이 든다는 답장이 왔다

내 고향은 추웠다
영하20도까지 떨어졌다는 어느날
신문기사에 고향이 나왔었다.
그 기사 말미에 인터뷰에 응한 80대 모 할아버지 왈,
"아 요즘 겨울이 겨울인가. 이 정도는 추워야 겨울이지!"
아이고, 할배요!

고향의 쨍쨍 얼어붙는듯한 그 추위는
할배의 시원스런 허세처럼
상쾌한 맛이 있었다

그 추웠던 곳, 산골소년의 기개는 다 어디갔는지
난 지금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벌벌 떨고 있다
그 사람과 다르게 난
추운 곳에서 따뜻한 곳으로 흘러온 것인데
뭔가 계란 반숙과 같은 감상이라도 들어야 하는게 아닌가
라고 심술을 부려본다

고향을 떠난 모든 사람들은
따뜻한 그리움을 품속에 안고
차가운 낯선 지방을 유랑하는 방랑객인 걸까

그러나 방랑객이어도 좋다

오늘 산에 올라
나무에 지친 몸을 기대자니
이 낭인에게도
해가 따뜻이 인사해주고
강은 S자 몸매를 굽이쳐 뽐내주고
새들은 노래해 주었으며
저 멀리 천왕봉도 또 놀러오라고 손짓해 주었다

따뜻한ㅡ
이 느낌,
지금 이곳이
고향이다

동무들이 있는 곳
모두 내
고향이다

이 다음 흘러갈 알 수 없는 그 곳도
내 고향이리라

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건 아마도 
산 정상에
그리움과 서러움
이 무거운 두 짐을 남겨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1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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