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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 전집 독서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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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 러브크래프트, 러브크래프트 전집, 정진영 옮김. 황금가지.

(벽 속의 쥐)



오늘은 러브크래프트 전집에서 벽 속의 쥐를 읽어보았습니다. 며칠전 저는 다키스트 던전이라는 게임을 잠깐 켠 적이 있었는데요, 인트로를 보니까 주인공을 어떤 선조의 저택으로 초대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물론 선조의 저택엔 큰 비밀이 숨겨져 있죠. 다키스트 던전이란 게임 자체가 러브크래프트 스타일을 명시적으로 표방한 작품인데요, 기본적인 줄거리 얼개는 '벽 속의 쥐'에서 따왔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벽 속의 쥐에서 인상적인 점은 러브크래프트 이 양반이 대체 얼마나 많은 고전과 신화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느냐입니다. 게임 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한번쯤 들어봤을 드루이드부터 해서, 많은 신화적 요소가 소설 속에 등장하는데요, 그런 요소들을 적재 적소에 신비롭게 활용합니다. 


작중 고양이 이름이 흑인을 비하하는 용어인 깜둥이, 즉 깜시라는 점도 눈에 띕니다. 이 대목이 러브크래트가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결정적 증거라는 사람도 있고, 당시엔 애완동물을 검둥이로 칭하는 게 일반적이었므로 인종차별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각주에서는 러브크래프트를 옹호하기에는 그가 전반적으로 혼혈인과 흑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그게 인종차별적 공격을 위한 의도는 아니었다고 적고 있네요. 러브크래프트 소설에서 뭔가 은밀하고 기괴한 광신도 집단이 혼혈인이거나 흑인인 경우가 많은 건 사실인데요, 과연 러브크래프트가 인종차별주의자라서 그런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벽 속의 쥐 절정 부분에서 주인공이 고대 영어, 중세 영어, 라틴어, 게일어를 동시에 말하는 부분은 압권입니다. 주인공 가문의 비밀을 단 한 장면으로 폭로하는 장치인데요, 마치 작가가 단칼에 독자를 베어버리는듯한 솜씨입니다. 다만 번역본에서는 어쩔 수 없이, 여러 언어가 동시에 튀어나올 때의 그 느낌을 충분히 전달받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러브크래프트는 장르 소설로 분류되지만, 요즘 기준으로따지면 거의 순문학 수준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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