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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라는 축복의 양면성 본문
「『오디세이』의 일화를 묵시록적 관점에서 해석한 리온 포이히트방거(Lion Feuchtwanger)는, 키르케의 마법에 걸려 돼지로 변해버린 선원들이 그 처지에 만족하여 오디세우스가 마법을 깨고 자신들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려 하자 이에 필사적으로 저항한다고 지적했다. 돼지로 변한 선원들은 오디세우스가 마법을 깨고 인간으로 돌아갈 약초를 발견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자신들을 구원하려는 열망에 찬 오디세우스가 도저히 따라잡지 못할 속도로 재빠르게 돼지우리로 도망을 간다. 오디세우스는 결국 돼지 무리 중 한 마리를 사로잡는 데 성공하는데, 기적의 약초로 한번 쓱 문지르니 억센 짐승가죽으로부터 엘페노르가 빠져나왔다. 포이히트방거가 주장하듯이, 그는 힘이 장사도 아니고 딱히 영리하지도 않은 '다른 이들과 똑같은'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선원이었다. '해방된' 엘페노르는 자신이 구출된 데 고마워하기는커녕 그의 '해방자'를 사납게 공격한다.
또 왔구나 나쁜 놈, 이 참견꾼 자식, 우리를 들볶고 못살게 굴고 싶어서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는구나. 심신이 고달픈 결정을 매번 하라고? 난 정말 행복했는데, 진흙탕에 뒹굴며 빛을 쬐고 꿀꿀 꽥꽥 내 멋대로 하면서 '이걸 해야 하나, 저걸 해야 하나,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따위의 생각과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는데, 왜 왔어? 예전에 살았던 그 끔찍한 삶으로 나를 다시 처박으려고?
해방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축복으로 위장한 저주인가 아니면 저주처럼 여겨지는 축복인가? 이는 '해방'이 정치개혁 일정에서 가장 중시되고 '자유'가 가장 중대한 덕목으로 손꼽히는 근대 시기 대부분 지식인들의 뇌리에 떠나지 않았던 질문이다. 자명한 사실은 자유는 좀처럼 쉽사리 얻어지지 않았고, 그 자유를 부여받아야 할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기 싫어했다는 것이다.」*
15/08/25
* 지그문트 바우만. (2009). 액체근대. (이일수, Trans.). 도서출판 강.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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