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러의 책방
삼류를 비판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최고에 집중하라 본문
「1953년 9월에 필라데피아에서 열린 세계 과학소설 대회에서 과학소설 작가 테드(시어도어) 스터전은 이렇게 연설했다.
사람들은 미스터리 소설을 이야기할 때 『몰타의 매』와 『깊은 잠』을 예로 듭니다. 서부물을 이야기할 때는 『서쪽 길』과 『셰인』을 언급하죠. 하지만 과학소설이 화제에 오르면 "그 버크 로저슨가 뭔가 하는 거"라고 부르거나 "과학소설의 90퍼센트가 쓰레기야"라고 말합니다. 예, 그 말이 맞습니다. 과학소설의 90퍼센트는 쓰레기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쓰레기가 아닌 10퍼센트이고, 쓰레기가 아닌 10퍼센트의 과학소설은 어떤 소설 못지않게 또는 더 훌륭합니다.
스터전 법칙을 덜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뭐든지 90퍼센트는 똥이다'가 될 것이다. 분자생물학 실험의 90퍼센트, 시의 90퍼센트, 철학 서적의 90퍼센트, 학술지에 게재된 수학 논문의 90퍼센트, 그 밖의 모든 것의 90퍼센트는 똥이다.
정말이냐고? 어쩌면 과장일지도 모르지만, 어떤 분야에서든 별 볼 일 없는 작품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깐깐한 사람들은 99퍼센트가 똥이라고 말하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여기서 우리는 좋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어떤 분야나 장르, 과목, 예술 형식을 비판할 때 ~에 야유를 보내느라 자신과 남들의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좋은 작품을 쫓아다니거나, 아니면 내버려두라.
하지만 분석철학, 진화심리학, 사회학, 문화인류학, 거시경제학, 성형수술, 즉흥 공연, 텔레비전 시트콤, 철학적 신학, 마사지 요법 따위의 평판을 무너뜨리고 싶은 논객들은 이 충고를 곧잘 무시한다.
우선, 온갖 종류의 한심하고 멍청하고 삼류인 작품이 널려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제 여러분의 시간과 우리의 인내심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여러분이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작품, 그러니까 찌꺼기 말고 그 분야 고수들이 칭송하는 최고의 사례와 수상작에 집중하라.
이것은 래퍼포트 규칙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바보 같은 익살극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것이 목표인 코미디언이 아니라면 희화화는 삼가라. 경험상, 상대방이 철학자일 때는 더더욱 삼가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가장 위대하고 지혜로운 현인으로부터 최근의 지적 영웅(성격이 전혀 다른 사상가 네 명만 들자면 버트란드 러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존 듀이, 장폴 사르트르)에 이르기까지 '모든' 철학자가 내놓은 최상의 이론과 분석도 교묘한 손재주 몇 번이면 완전한 바보짓이나 지긋지긋한 트집 잡기처럼 보이도록 할 수 있다.
우웩. 구역질 난다. 제발 그러지 말라. 그래봐야 평판을 잃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니까.」*
예전에 국내 인문/사회 계열 논문의 인용횟수 통계를 본 적이 있다. 등재된 논문의 90%는 인용횟수가 0이었다. 심지어 자기인용도 한 번도 되지 않은 말 그대로의 0. 즉, 90%의 논문은 저자 자신조차 출판 이후 관심을 끊었거나 추가 연구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 90%가 그냥 쓰레기인 것은 아니다. 나는 '똥'이라는 표현이 더 마음에 든다. 똥은 거름이다. 그 90%의 거름이 없었다면 10%의 열매도 없었을 것이다.
15/06/09
* 대니얼 데닛, <직관 펌프 생각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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