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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과 상상력이 과학과 철학, 문명을 발전시킨다 본문
어드벤처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관찰은 이미 이론(형이상)을 전제하고 있다는 걸. 머릿속에 전제된 틀이 바뀌지 않으면 죽어도 관찰되지 않는 사실들이 있다.
「우리가 과학사를 돌이켜 볼 때 유전자나 세균의 존재, 해왕성과 명왕성의 존재,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 고생물학에서 공룡멸종 가설이나 지질학에서 대륙이동설은 모두 귀추법(abductive reasoning or retroduction)에 근거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물리의 법칙이라고 하는 운동의 법칙·중력의 법칙·열역학 법칙·전자기학 법칙·고전 물리학과 양자역학의 법칙 등은 단순 나열에 의한 귀납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헨슨에 의하면, 뉴턴이 "가설을 만들지 않는다"고 말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과학적 전제들은 '사변적·창조적'인 구성의 결과물이다. 귀추법은 과학에서 새로운 개념적 도약이 일어날 때마다 사용된 추론방식인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합리적 도식의 검증은 그 일반적인 성공에서 추구해야 하며, 그 최초의 원리들의 특수한 확실성이나 최초의 명료성에서 탐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즉, "철학은 전제들을 위한 탐구이다. 그것은 연역이 아니다. 여기서 추론하는 연역들은 결론을 가지고 출발점을 테스트하는 목적을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은 논의는 앞에서 설명한 귀추적인 방법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형이상학은 단순한 귀추법이 아니다. 그것은 미학·종교·윤리가 결합된 새로운 우주론을 탐구하는 창조적 가추법, 메타 가추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새로운 가설적 우주의 이론이 현실을 제대로 설명해 내는가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철학을 '철학적 일반화' 혹은 '상상적 일반화'의 작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적 구성의 참된 방법은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관념들의 도식을 축조하고, 그 도식에 의거하여 과감하게 경험을 해석해 나가는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방법론인 '상상적 합리화 방법'(The method of imaginative rationalization) 혹은 '가설 연역적 방법'(hypothetico-deductive method')을 비행기의 이륙에 비유하고 있다. 이 비유는 과학적 추론 과정과 마찬가지로 철학도 귀추적 과정을 통해 연역적으로 구성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진정한 발견의 방법은 마치 비행기의 비행과 흡사하다. 그것은 개별적인 관찰이라는 대지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상상력에 의한 일반화라는 희박한 대기권을 비행한다. 그리고 나서 합리적 해석으로 더 정교해진 시야를 갖고 새롭게 관찰하기 위해 다시 착륙한다. 차이를 찾는 방법이 실패할 때 이 상상적 이론화의 방법은 성공하는 이유는, 아직 관찰되지 않았지만 거기에 변합없이 현존하고 있는 요인들이 상상적 사고의 영향 아래에서 앞으로 관찰될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러한 사고는 직접적 관찰에서 드러나지 않는 차이를 보완한다. 그것은 심지어 모순까지도 적절히 다룰 수 있다. 그래서 경험에 나타난 일관된 요소들, 영속적인 요소들을, 상상 속에서 그것들과 모순되는 점들을 비교함으로써 진정한 발견들을 조명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유명한 진술은 세 단계를 거쳐 가는 방법적 절차를 보여 준다. '개별적 관찰', '합리적 해석을 통한 상상적 일반화', '날카로워진 새로운 관찰'이 그것이다. 관찰은 이미 이론 의존적이기에, 새로운 관찰은 새로운 일반화된 이론을 전제로 한다.
과학의 모든 이론들이 귀추적 과정을 통해서 발전되어 온 것이 사실이라면, 철학 역시 귀추적 과정에 의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도식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 화이트헤드의 입장이다.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문명을 발전시킨 새로운 생산적 사고는, "예술가들의 시적인 직관에 힘입거나, 또는 논리적 전제로 이용할 수 있는 사고의 도식을 상상력으로 정교하게 만들어 내는 데에 힘입어 생겨나게 되었다". 따라서 화이트헤드의 철학적 방법은 "끊임없이 전진할 뿐 멈추는 법이 없는 하나의 모험"이라 할 수 있다.」*
14/12/16
* 김영진,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 위상적 세계에서 펼쳐지는 미적 모험>에서 발췌, 수정,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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