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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언어든 선(禪)이 아니겠으며, 무슨 법인들 도(道)가 아니랴 본문
「어떤 사람일 말하기를 "그대가 참구하는 선(禪)은 불변인 언어를 잊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데도 세제(世諦)의 언어를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어느 곳에서 참선의 위대함을 취하겠는가"라고 하기에 나는 말하였다.
"그렇지가 않다. 거위가 울고 까치가 지저귀는 것이 모두가 타고난 천기(天機)에서 스스로 움직인 것이며, 개미가 무더기로 모이고 벌들이 노니는 것이 모두가 신령한 이치로 귀결된다. 이와 같다면 어떤 언어이든 선이 아니겠으며, 무슨 법인들 도가 아니랴. 하물며 분별지를 버리고 주관적인 회포를 잊는 담론이 어찌 참선으로 들어가는 초보의 경지가 아니랴.
또한 선은 나라는 아집이 본성을 가렸기 때문에 아집을 타파함으로써 선의 이치에 도달함이 아니겠느냐. 노자는 이러한 경지에 먼저 올랐던 것이다. 가령 세상을 하루살이처럼 여기고 희롱한다면 더욱이 이것으로써 낙토(樂土)를 삼아야 된다.」*
옳고 그름의 분별지(分別智)를 버리는 것은 참선의 초보 경지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참선의 초보 경지에서는 언어를 잊고 침묵하지만, 참선의 고급 경지에서는 다시 언어를 갖고 발언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십우도(十牛圖)에서 마지막에 수행자가 다시 세속으로 돌아오듯이. 장자식으로 말한다면, "언어는 또 왜 차별하는가?"
14/08/17
* 감산덕청 지음, 송찬우 옮김, <노자, 그 불교적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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