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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러의 책방
「결국 어느 누구도 책이나 다른 것들에서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얻어들을 수 없는 법이다. 체험을 통해 진입로를 알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들을 귀도 없는 법이다.」*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들을 쓰는지」 중 15/11/18 * 야니스 콩스탕티니데스, & 다미앙 막도날드. (2012). 유럽의 붓다, 니체. (강희경, Trans.). 파주: 열린책들. 2015/02/01 - 체험이 곧 법문이요, 세상이 곧 경전이다 2015/09/05 - 철학은 이해하지만 지혜는 깨닫는다 2012/03/28 - 놀라운 사람들과의 만남 2015/10/28 - 비트겐슈타인의 인생 노트 니체
「오늘날 진실로 결정적이며 유용한 업적은 항상 전문적 업적입니다. 그러므로 말하자면 일단 눈가리개를 하고서, 어느 고대 필사본의 한 구절을 옳게 판독해내는 것에 자기 영혼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생각에 침잠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예 학문을 단념하십시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우리가 학문의 '체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결코 자기 내면에서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학문에 문외한인 모든 사람들로부터 조롱당하는 저 기이한 도취, 저 열정, '네가 태어나기까지는 수천 년이 경과할 수 밖에 없었으며', 네가 그 판독에 성공할지를 '또 다른 수천 년이 침묵하면서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은 학문에 대한 소명이 없는 것이니 다른 일을 하십시오. 왜냐하면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만이 진정으로 ..
"신비주의는 우리가 겪는 신비로운 체험 속에서 무언가 보존할 만한 것을 끄집어내려는 시도로, 혹은 적어도 그것에 관한 기억이라도 보존해 내려는 시도로 우리를 이끕니다. 말은 신비를 매우 희미하게만 전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무한과의 교감을 자각하고 있으면서, 어떤 형태로도 그것을 전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신비로운 체험을 남겨놓으려는 노력 속에서, 그 경험을 보존할 수 있는 형식을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내려는 시도 속에서 사상이나 예술과 같은 형태로 신비를 명확히 설명해보기(clarification)가 등장합니다. 그다음 이 설명은 행동으로 전환하지요. ··· 신비주의, 설명, 행동, 지금까지 이런 형태로 제안한 적은 없지만, 이것이 내가 서술하고 싶은 순서입니다."* 14..
「알라딘 : 시공사 그리폰북스, 열린책들의 경계소설 시리즈 등 1990년대 중반 이후 국내에 출간된 SF 중에 김상훈씨의 손이 안 간 기획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요. 그렇게 열정적으로 힘을 쏟게 만드는 SF의 매력은 뭘까요? 김상훈 : 의식의 확산입니다. 훌륭한 SF를 읽었을 때 느끼는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은 종교체험에 필적합니다. (웃음) 알라딘 : 아, 그런 걸 SF 팬덤에선 경이감(Sense of Wonder)라고 하지요.」* 경이감, 훌륭한 시를 읽었을 때 느껴지는 말로할 수 없는 신비로운 느낌과 비슷하면서도 또 조금 다른, 그러한 체험. SF를 읽자. 14/12/01 * 알라딘 저자 인터뷰, 에서 2013/02/20 - 멀리 가는 이야기 SF
「학문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의 절실한 문제를 궁구해야만 비로소 의미가 있다. 독서는 이미 부차적인 것밖에 되지 않는다. 자기 자신 속에 '도리'가 완비되어 있으므로 밖에서 더 채워야 할 것은 없다. 그럼에도 성인이 반드시 책을 읽으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쳤던 것은 자기 자신 속에 이 도리가 갖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그것을 경험해야만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성인이 말씀하신 것은 바로 성인 자신이 일찍이 경험하였던 것이다.」* - 주희 14/10/20 * 미우라 구니오, 주희 학문
「동양철학이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는 자만을 하지 마라. 이 원칙은 바로 앞의 것과 모순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모든 사물과 사태에는 동이同異가 더불어 있고, 길은 대개 절충과 중용에 있는 법이다(절충 또한 용어의 의미가 전통 이전과 이후에 현격히 달라졌다). 스토아 학파의 황제의 어록을 펼치면 "이런, 유교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네"하고, 또다른 노예 철학자의 어록을 펼치면 "이런, 서양에도 불교가 가르치는 대로 살았던 사람이 있었네"하고 놀라게 된다. 스피노자가 그의 '윤리학'을 자연의 신성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기氣를 윤리학의 근원으로 보는 화담과 장재는 물론, 원형이정元亨利貞과 인의예지를 이理, 즉 자연의 '의지'이자, 인간의 '본성'으로 이해한 '주자학'..
수신(修身) 혹은 수양(修養)을 철학의 중심 과제로 늘 꽉 부여잡고 있었다는 것, 이것이 동양의 종교나 철학 전통의 위대함이다. 동양의 전통에서 형이상학은 단지 지식으로 알아할 과제가 아니라 몸으로 증득하고 체험하고 검증해야 할 과제였다. 공자가 말했듯이,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이로다. 「'철학'의 외양을 한 필로소피가 등장함으로써 전통유학이나 불교는 때 아니게 정체성을 의심 받고, 정당성을 도전 받게 되었다. 논리와 체계로 무장한 철학은 묻는다. "얘야, 유교는 일상의 조언들로 가득 차 있던데, 그건 철학이냐, 잠언집이냐." 그리고 유일신의 초월성을 등에 업은 '종교'는 묻는다. "불교야, 너는 무신론 같기도 하고, 다신론 같기도 한데, 너를 '종교'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이것은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