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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러의 책방
『논어』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대한 종래의 해석: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의 배우는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배웠으나 요즈음의 배우는 사람들은 남에게 알려지기 위해 배운다." 새 해석: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의 배우는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배웠으나 요즈음의 배우는 사람들은 남을 위해 배운다." 「공안국 이래의 모든 해석들이 爲人(위인)을 표현된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는 남을 위해서 배우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공자는 "남을 위하여 배우는" 경향을 개탄하였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논어 안에 널브러져 있다. 논어는 도처에서 타인에 대한 어설픈 베풂을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아라"하는 말로..
「신은 항구적이고 세계는 유동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세계는 항구적이고 신은 유동적이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이다. 신은 일자(一者)이고 세계는 다자(多者)라고 말하는 것은, 세계는 일자이고 신은 다자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이다. 세계와 비교할 때 신이 탁월하게 현실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신과 비교할 때 세계가 탁월하게 현실적이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이다. 세계가 신에 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신이 세계에 내재한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이다. 신이 세계를 초월한다고 말하는 것은 세계가 신을 초월한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이다. 신이 세계를 창조한다고 말하는 것은 세계가 신을 창조한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이다. 신과 세계는 대비를 이루며 대립하고 있다. 이 대립을 통해 창..
「신학의 임무는 어떻게 '세계'가 단순히 변천하는 사실을 초월한 그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데에 있으며, 또 어떻게 '세계'가 소멸하여가는 계기들을 초월한 그 무엇에 귀속되는가를 보여주는 데 있다. 시간적인 '세계'는 유한한 성취의 무대이다. 우리가 신학에 요구하는 것은, 소멸하여가는 삶 속에서도 우리의 유한한 본성에 고유한 완성을 표현하는 가운데 불멸하는 그런 요소를 표현해 달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서 삶이 기쁨이나 슬픔보다도 더 깊은 만족의 양상을 포함하는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14/11/17 * 화이트헤드, 화이트헤드
「몸의 완성은 체육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 ... 그 완성은 모든 문화, 영혼과 심령과 정신, 생명의 참된 목표이며, 그것은 또한 우리의 물리적 문화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존재의 총체적인 완성을 추구한다면, 존재의 신체적 부분을 제쳐놓으면 안 될 것이다. 신체는 물질적인 기초이자 우리가 사용해야 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옛 산스크리트 격언은 "몸은 다르마(dharma)의 달성을 위한 수단"이라고 말하고 있다. ... 만약 몸이 변형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만약 몸의 행동과 기능이 최고의 능력과 최고의 완성에 이르지 못한다면 우리의 이상은 그 실현이 불가능하다.」* 13/12/09 * 스리 오로빈도, 에서 인용, 수정. 몸에 깨어있기 스리 오로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