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경향 (11)
모험러의 책방
「중국인들은 주도 요인 또는 그들이 명명하듯이 '상황의 잠재력'[勢]에 대한 성찰을 극히 멀리까지 밀어붙였기 때문에, 전쟁에서 용기와 비겁함도 (그대로 인용하자면) '세(勢)의 귀결'이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용기와 비겁함은 우리가 본질적으로 소유한 자질이나 결함이 아니다. 나는 용감하거나 비겁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나를 용감하거나 비겁하게 만드는 것은 상황, 더 정확히는 상황의 잠재력이다. 여기서 어떻게 유럽적 휴머니즘과의 간극이 생기는지 보라. 유럽에서는 용기를 기꺼이 인간적 자질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게으른 사람이거나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용기가 도덕적 관점에서 파악된 덕이 아니라 상황 잠재력의 효과로 간주될 경우, 중국 장군은 그의 병사들이 비겁하거나 ..
「손자나 손빈의 병법을 읽어보면 그 전략적 사유의 가장 지배적인 두 개념은 앞에서 구분한 모델화와 그 적용을 필요로 하지 않고 심지어 이런 구분을 파괴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첫째 개념은 '상황', '지세', '지형'[形]이고, 둘째는 내가 제안하는 번역으로 '상황의 잠재력'[勢]이다. 『손자병법』은 전략가에게 상황에서 출발할 것을 권고한다. 여기서 상황은 내가 미리 모델화할 상황이 아니라, 내가 이미 개입되어 있는 상황이다. 즉 그 상황 한가운데서 잠재력이 어디에 있고 또 어떻게 그것을 활용할 것인지를 내가 포착해내고자 하는 그런 상황을 말한다.」* 16/02/02 * 프랑수아 줄리앙. (2015). 전략: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 중국까지. (이근세, Trans.). 파주: 문학동네. 2016/02/0..
(Clarke, 1990): 이윤율저하법칙은 축적법칙의 하위범주이지 그 역이 아니다. 이윤율저하법칙은 자본주의 동학의 더 넓은 맥락의 일부로 봐야 한다. 이윤율저하가 자본주의를 위기에 취약하게 하지만, 이윤율저하를 공황의 직접(근본)원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불비례, 과소소비(실현문제), 이윤율저하가 끊임없이 자본주의 생산의 장벽으로 작용하고('장벽'과 '한계'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 또 이것들이 공황을 촉진하는 요소로 기능하고, 또 이것들이 단순히 공황 때만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매일의 일상에서 자본 일부를 끊임없이 파산시키고 몰락시키고 있지만, 자본은 동시에 이 장벽을 부수고 넘어서고 있으며, 이것들만으로는 갑자기 전면적으로 들이닥치는 일반 공황(general crisis)을 설명..
「경향은 시대에 따라 변하며 또 일관성은 경향에 따라 달라진다. 혹은 시대가 성향을 좌우하며, 성향이 일관성을 좌우한다. 그러기에 "자연스런 경향 없는 내적 일관성이란 없으며 내적 일관성 없는 자연스런 경향이란 없다." 따라서 삶에만 논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도 논리가 있으며, 질서에만 논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혼돈에도 논리가 있으며, 나아가 생존에만 논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쇠락에도 논리가 있는 것이다. 이는 국가의 운명이나 개인의 운명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역사공부는 먼저 성향을 분석하고 그 내적 논리를 철저히 이해하여 각 특수상황으로부터 교훈을 추출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흐름의 일관성은 성향의 필연성을 통해 밝혀진다. 왜냐하면 내적 일관성은 원칙상 비가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왕부지는 을 보는 두 극단적 관점의 오류를 밝힌다. 그 오류의 하나는 을 도덕론으로서만 고찰하여 에 내포된 투시력을 간과해버리는 관점이며, 다른 하나는 을 운명서로서만 고찰하여 예견능력의 토대인 도덕적 요소를 간과해버리는 관점이다. 사실 은 다음 두 가지 측면을 갖추고 있다. 하나는, 사람은 운행으로서의 모든 생성에 내재하는 일관성의 개념 ― 연속과 변이, 시초와 성향 ― 에 의거할 때 비가시에 이를 수 있으며 그 효능성과 맺어져 경향을 탐지하고 변화를 예견할 수 있음이며, 다른 하나는 바로 생성에 관련된 모든 징후는 때로 상황이 요구하는 대로 운행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는 반면, 정도로부터 탈선할 수도 있는 까닭에 항상 윤리적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다. 따라서 은 사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도덕성이 ..
「선견과 수정의 능력이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의식의 흐름과 도덕적 삶 속에서이다. 왜냐하면 의식을 운행과 완전히 별개로 여기는 도덕론자들은 도덕적이지 않은 모든 것은 항상 흐르고 있는 올바름과 규범성으로부터의 이탈로서 간주해 버린다. 그들에게 있어 올바른 기능으로부터 벗어나는 모든 이탈은 하나같이 심각하고 위험스러운 것으로 사람의 신세를 망치게 하며 한 시대를 패망으로 치닫게 하는 되돌릴 수 없는 과오인 것이다. 그러나 선견과 수정의 능력을 갖춘 자에게 이러한 이탈은 아무리 끝이 나쁘다할지라도, 이는 시초의 잘못에서 야기되는 당연한 후과로서 파악된다. 이탈도 처음에는 언제나 미미하여 자칫 지나쳐 버리기 쉽다. 그러나 일단 시작된 경향은 점진적으로 자리를 잡기 마련이니, 성향이란 한번 정해지..
「중국인들은 실재적인 모든 것을 장치로서 간주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무한한 일련의 가능한 원인들을 찾기 위해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그들은 성향의 불가피한 특성에 민감하기 때문에, 단순히 개연적일 뿐인 목적에 대해서도 사유하지 않는다. 우주 발생론에 관한 목적론적 전제도 이들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그들은 세계의 시초에 대해 이야기하지도, 세계의 결말을 상상해보지도 않는다. 오래전부터 언제나 작동 중인 상호작용만이 존재할 뿐이며, 실재는 이러한 상호작용의 끊임없는 운행일 뿐이다. 그러므로 중국인들은 그리스적 개념에 따라 생성과 감각적인 것에 대립되는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기능할 수 있는 능력의 문제에만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 그들은 '실재 속에서 작동 중임을 우리가 어디에서나 확인할 수 있..
「'긴장-이완', '펼침-접힘' 또는 '질서-무질서', '도약-쇠퇴': 모든 역사는 냉혹하게 '고저의 기복을 따라' 진행된다. 이는 시간의 흐름에 투사된 어떤 형이상학적 원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모든 과정에 내재해 있는 필연성에 따른 것이다. 즉, 작용 중인 요인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필연적으로 고갈되고, 그것을 보충하는 요인에 의해 대체된다. 그러므로 규제적인 역학이 생성의 각 단계마다 본래부터 내재해 ― 가장 신중한 방식으로 ― 있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규제적 역학이 모든 역사적 상황을 조작 가능한 장치로 만든다. 이러한 점에서 전략은 더할 나위 없이 단순하지만, 인류가 나아갈 도덕적 방향의 역할을 할 정도로 그렇게 지속적으로 실생활에 적용된다. 따라서 사물의 흐름 속에서 작동 중인 경..
「바로 이러한 것이 왕부지가 역사 속에서 줄기차게 작동하고 있다고 발견해낸, 고대로부터 밝혀져 있는 전복의 논리이다. 사실 역사의 과정은 자연의 과정과 마찬가지로 규칙적인 방식으로 균형과 보상에 의해 작동한다. '응축된 것은 다시 새롭게 펼쳐질 수 있으며, 바로 이러한 것이 상황[勢]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경향이다.' 물론 경쟁적인 세력들 사이에서도 사정은 이와 비슷하다. 고대 중국에서 진나라가 점차 강해져 (경왕 때) 헤게모니를 잡게 되었다가 그 다음에 쇠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과정의 냉혹함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앞선 예(송나라의 성종과 왕안석)에서 볼 수 있듯이, 지나치게 권위적인 정치적 압력이 느슨해지는 것은 전적으로 저..
「'일단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멈출 줄 모른다.' 바로 이러한 것이 '상황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경향'(역사 속의 세)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정의이다. 당 말엽(9세기 후반)에 발발하였던 농민의 반란이 그 좋은 예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반란이 진정되면 곧장 다른 반란(구보의 반란에 이은 방훈의 반란과 같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경향은 '저절로 전개되고 스스로 멈출 수 없게 된다'. 경향은 그 스스로 점진적으로 최악의 상태에 이르는 법이다. 또 다른 종류의 예로 황후가 국정에 간섭하는 섭정의 경향을 살펴보자. 3세기에 취해졌던 유익한 조치는 이러한 간섭을 엄격하게 금지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간섭은 당나라 때 다시 나타났고, 사람들은 이 간섭에 단호하게 종지부를 찍었으나, 송나라 시절에는 전보다..
「사람들을 거짓으로 진정시키는 이런 획일화된 사관은 인위적인 짜맞추기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그 진상을 밝혀내는 것이 마땅하다. 한과 당이라는 두 위대한 왕조 사이에는 소위 정통한 것이라고 주장된 연속성(3세기와 10세기의)의 한복판에 거대한 공백기로서 지속되었던 혼돈과 무정부의 시기가 있었다. 질서가 무질서를 대체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질서가 무질서에 대한 단순한 '연장선상에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정치적 통일성이 분열 상태 다음에 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역사적 상황 속에서 하나의 경향은 반대의 경향을 희생하는 대가를 치르고서만 실행되고 지배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질서 또는 무질서, 통일 또는 분열 상태는 서로 대립되는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