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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언어, 개소리, 그리고 정명(正名)

모험러

「우리 시대의 정치적 연설과 글쓰기는 대부분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하는 데 사용된다.

따라서 정치적 언어는 주로 완곡어법과 논점 회피, 그리고 순전한 모호함으로 가득 차게 된다. 무방비 상태의 마을들이 공중에서 폭격당하고, 주민들은 시골로 쫓겨나며, 가축들은 기관총으로 살해되고, 오두막은 발화탄으로 불태워진다: 이것을 '평화 정착'이라고 부른다. 수백만 명의 농민들이 그들의 농장에서 쫓겨나 가진 것만을 들고 길을 떠돌게 된다: 이를 '인구 이동' 또는 '국경 조정'이라고 부른다. 재판도 없이 수년간 투옥되거나, 목 뒤에서 총살당하거나, 북극의 벌목장에서 괴혈병으로 죽어가도록 보내진다: 이를 '불안정 요소의 제거'라고 부른다.

이러한 어법은 실제 일어나는 일들의 심상을 떠올리지 않고도 그것들을 지칭하고 싶을 때 필요하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전체주의를 옹호하는 어떤 안락한 영국 교수를 생각해보라. 그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반대자들을 죽이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소비에트 체제가 인도주의자들이 개탄할 만한 특정한 측면들을 보여주고 있음을 자유롭게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정치적 반대의 권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제한이 과도기의 불가피한 동반자라는 점에 동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러시아 국민이 견뎌내야 했던 고난들은 구체적 성과의 측면에서 충분히 정당화되었다."

과장된 문체 자체가 일종의 완곡어법이다. 라틴어 단어들이 눈처럼 사실들 위에 쌓여, 윤곽을 흐리고 모든 세부사항을 덮어버린다. 명확한 언어의 가장 큰 적은 부정직함이다. 실제 목적과 공언된 목적 사이에 간극이 있을 때, 마치 오징어가 먹물을 뿜어내듯 본능적으로 긴 단어들과 진부한 관용구들을 사용하게 된다.

우리 시대에는 '정치와 거리를 두는 것'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문제가 정치적 문제이며, 정치 자체가 거짓말, 회피, 어리석음, 증오, 그리고 정신분열증의 덩어리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나쁠 때, 언어는 필연적으로 피해를 입는다.」

- 조지 오웰, 정치와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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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평화다”, “자유는 예속이다”, “무지는 힘이다”. 조지 오웰이 파시즘과 전체주의 하의 광기와 언어유희를 이렇게 비꼬았다. 당시 그는 나치 하의 독일과 소련 전체주의를 빗대서 이렇게 말했지만, 우리는 그것이 지금 한국 이야기라는 것을 섬찟하게 알아챌 수 있다. 

무장 군인의 국회 난입이 ‘질서유지’, 계엄이 ‘계몽’, 서부지법 파괴가 ‘성전’, 폭력배가 ‘애국자’, 그리고 내란 혐의로 구속된 대통령이 방어권 보장을 못 받는 인권침해 피해자가 되었다, 그래서 권리행사 못하는 약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국가인권위가 대통령 방어권 보장 요구를 의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언어의 장난을 한국에서 가장 힘있는 국회의원,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집단인 판사 검사,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신문이 저지른다.」

- 김동춘, 코앞에 다가온 극우 파시즘,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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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개소리가 너무도 만연하다는 사실이다. 

진리에 대한 관심에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 즉 사태의 진상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한 무관심. 이것이 바로 내가 개소리의 본질이라고 보는 것이다.

개소리의 본질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이 '가짜'라는 데 있다.

개소리쟁이는 거짓말쟁이와는 달리 진리의 권위를 부정하지도, 그것에 맞서지도 않는다. 개소리쟁이는 진리의 권위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점 때문에,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훨씬 더 큰 진리의 적이다.

오늘날 개소리의 확산은 또한 다양한 형태의 회의주의 속에 보다 깊은 원천을 두고 있다. 회의주의는 우리가 객관적 실재에 접근할 수 있는 어떤 신뢰할 만한 방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따라서 그것은 사태의 진상이 어떠한지를 인식할 가능성을 부인한다. 이러한 '반실재론적' 신조는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사심 없이 노력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을 무너뜨리고, 심지어 객관적 탐구라는 개념이 이해 가능한 개념이라는 믿음을 약화시킨다.」

- 해리 프랭크퍼트, ′개소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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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께 정치를 맡기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공자: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

자로: “하여튼 이렇다니까요! 선생님은 어째 그리 뜬구름 잡는 말씀만 하십니까? 그걸 어떻게 바로잡겠습니까?”

공자: “거칠구나, 자로야! 군자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은 대체로 비워놓는 법이다. 만약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정연하지 않고, 주장이 정연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성취되지 않고, 일이 성취되지 않으면 예악이 흥성하지 않고, 예악이 흥성하지 않으면 형벌 적용이 올바르지 않다. 형벌 적용이 올바르지 않으면, 백성은 손발 둘 곳이 없게 된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이름을 붙였으면 반드시 주장할 수 있어야 하고, 주장을 했으면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이니, 군자는 자신이 말한 것에 구차한 바가 없게 해야 한다."

-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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