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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단절된 일본의 유가사상 본문

명문장, 명구절

하늘과 단절된 일본의 유가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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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왕부지와 동시대의 일본유가사상가들의 공통된 주제와 관점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 모두 주희에 의해 정립된 정통유가론에 대응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옛 황금시대에 대한 믿음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특히 일본의 진사이의 경우처럼) 이상적인 과거와 경멸스런 현재를 대립시키려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송말과 원말의 사상에서 드러나는 보다 금욕적이고 관조적인 경향에 반대하여 행동과 동작과 감흥을 재평가하고 욕망을 인정하였으며 결코 과욕과 일탈을 경원시하지만은 않았다.(일본은 야마가 소코오가 그 기원이다.) 그들은 질서와 조절의 원칙인 리가 기의 전개에 대해 갖는 선행적이며 초월적인 위상에 비슷한 의문을 제기한다. 왜냐하면 리와 기는 각기 독립적이며 고립된 두 실체를 형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일본에서 카이바라 엣켄의 비판이 그 대표적 예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점의 일치에도 불구하고 왕부지사상과 동시대 일본 유가상가들을 확연히 분리시키는 점이 있다. 이 점은 바로 일본유가사상가들이 총체적인 운행관을 방기함으로써 야기된 것이다. 총체적 관점이 세계관에서 방기될 때, 과연 그러한 세계관은 어떻게 되는지를 간략히 알아보자. 자연과 우주, 도덕과 정치, 그리고 미학은 더 이상 상호연속적인 측면에서 인식되지 않고 각기 독자적이며 분리된 대상이나 영역을 형성하게 된다. 그 결과 왕부지와는 달리 '하늘'을 더 이상 사물의 운행을 부추기며 조절하는 공평하고 연속적인 원칙인 '천도'로서 인식되지 않는 나머지, 인간의 노력으로는 꿰뚫어 볼 수 없는 개인적 권능과 의지로서 인식되고 만다.(일본에서의 천명 개념처럼.) 이 경우 하늘의 초월성은 단순히 내재성의 절대화로부터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 불가능한 신비성을 지닌 채, 인간에게 종교적 관점에서의 두려움을 부여하는 신앙의 대상으로 부각된다.(이는 당시 일본의 대사상가인 오규 소라이와 이토 진사이의 경우에 특히 두드러진다.) 


중국의 세계관을 개인화된 신(저 높은 곳의 주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 것은 세계를 운행으로 파악하는 사상이다. 운행에 내재하는 일관성의 관점을 멀리하는 일본의 유가사상가들은 당연히 하늘을 신격화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유가사상의 기조를 이루는 우주론과 도덕의 관계는 단절되며 자연은 더 이상 규범이 아니니, 인간과 하늘이 결정적으로 분리된다.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윤리는, (진사이에서처럼) 외부에서 강제적으로 부과되는 초월적 절대로 인식되든, 아니면 (소라이에서처럼) 개인적 삶의 테에 국한된 것으로 인식되든, 한낱 인간의 일상에 머무르는 특수한 영역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도덕은 정치와 분리되며, 정치는 법규와 제도의 원칙만을 따르는 것으로만 인식될 따름이다.(소라이는 선왕들의 작품인 법규와 제도를 절대적 하늘의 초월성에 속하는 것으로 본다.) 정치는 각 개인의 도덕적 완벽성에만 관계하거나 그러한 개인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에만 관계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 분명하게, 소라이의 역사관을 계승한 18세기 '코쿠가쿠(國學)'의 우주생성론적 세계관(신토(神道)를 토대로 발전한 이 세계관)은 따지고 보면 창조사상과 아주 흡사하다.(이 세계관은 적어도 성경과 무관하지 않은, 창조주인 신의 개념으로 나아가는 종교관을 지녔던 히라타 아쓰타네에게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로써 역사는 고유한 독자성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중국역사의 어떤 한 순간에 등장하는 인물들로부터 도를 세우고 이들을 절대적 초월성의 차원으로 추대하니, 역사적 사건은 그 자체로 내재적이며 획기적인 것으로서의 위상을 지닐 수 있었으며 역사의 전개 또한 독립적인 것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과 시작(詩作)도 하나의 고유한 영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이는 진사이와 소라이가 신유가주석가들에 대항하여 주장하는 바이다.) 미적 감흥은 (개인성으로서의) 인간의식의 특수한 차원에 속한다. 반면 중국예술관에서의 모든 감흥은 세계의 자극아래 발동하는 의식으로서, 그 원칙상 긍정적으로 나아가며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언제나 실재에 속하기 때문이다) 파급력을 지닌다. 감흥의 파급력은 '시적'인 만큼 도덕적이며 정치적이다.(지드Gide가 하는 말과는 거꾸로, '좋은 문학'을 만드는 것은 '좋은 감정'이다. 이로부터 시주석詩註釋의 일괄적인 교화성이 비롯하며, 이 교화성은 전통 속에서 경직된다.)」*


15/09/30


* 프랑수아 줄리앙. (2003). 운행과 창조. (유병태, Trans.). 케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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