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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은 나를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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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대한 종래의 해석: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의 배우는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배웠으나 요즈음의 배우는 사람들은 남에게 알려지기 위해 배운다."


새 해석: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의 배우는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배웠으나 요즈음의 배우는 사람들은 남을 위해 배운다."


「공안국 이래의 모든 해석들이 爲人(위인)을 표현된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는 남을 위해서 배우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공자는 "남을 위하여 배우는" 경향을 개탄하였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논어 안에 널브러져 있다. 논어는 도처에서 타인에 대한 어설픈 베풂을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아라"하는 말로 집약되는 이 중요한 관점은 "무릇 어진 자는 스스로 서기를 바라서 남을 세우고 스스로 통달하기를 바라서 남을 통달시킨다"는 말에 이르러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자기 자신 안에서 이루어지는 변화 없이는 그 어떠한 노력도 남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 남으로 가는 통로는 바로 나이다. 나의 바깥에서 남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만남은 나를 벗어나지 않고 이루어진다. 여기에 공자의 일관된 사유체계가 있다. 공자는 이를 서(恕)라 불렀던 것이다. 이 원칙을 벗어나 섣부르게 이루어지는 모든 "남을 위하는 것"(爲人)은 결국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헛된 수고에 그치고 만다.


일찍이 송유(宋儒) 장식(張栻)은 이를 정확히 이해했다.


"배움은 자기를 완성시키는 것이다. 외물(外物)을 완성시키려는 것은 단지 자기를 완성시키는 것에서 미루어 가는 것일 따름이다. 따라서 옛날의 배우는 사람들은 자기를 위했을 뿐이다. 자기가 확립되면 남을 위하는 도(道)는 반드시 그 가운데에 있다. 만약 남을 위하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이는 바깥으로 떠돌며 그 근본을 버리는 것이 된다. 근본이 확립되지 않으면 자신을 완성시킬 수가 없으니 장차 무엇으로 남에게 미칠 것인가!"


- 장식(張栻)」*


남이 아니라 자기를 위하여 배울지니, 자기가 확립되지 않으면 도우려 해도 남을 해치게 되고, 자기가 확립되면 돕지 않으려 해도 남은 저절로 도와진다.


15/01/17


* 이수태, <논어의 발견>에서 발췌, 편집,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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