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러의 책방
연암의 지행합일 반론 본문
주희 선생은 먼저 힘써 알아야함을 강조했고, 왕양명 선생은 (굳이 따지자면) 먼저 힘써 행해야함을 강조했다. 연암 박지원 선생은 주희 선생의 손을 들어 준다. 아래글에서 연암은 행을 먼저하고 지를 뒤로하는 것의 위험을 말하고 있다.
「무릇 도란 길과 같으니, 청컨대 길을 들어 비유해 보겠다. 동서남북 각처로 가는 나그네는 반드시 먼저 목적지까지 노정이 몇 리나 되고, 필요한 양식이 얼마나 되며, 거쳐 가는 정자·나루·역참·봉후의 거리와 차례를 자세히 물어 눈으로 보듯 훤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 뒤에야 다리로 실지를 밟고 평소의 발검음으로 평탄한 길을 가는 법이다. 먼저 분명히 알고 있었으므로, 바르지 못한 샛길로 달려가거나 엉뚱한 갈림길에서 방황하게 되지 않으며, 또 지름길로 가다가 가시덤불을 만날 위험이나 중도에 포기해 버릴 걱정도 없게 되는 것이다. 이는 지와 행이 겸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행하면 저절로 알게 된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헤엄쳐서 물속의 달을 건지거나 북을 치면서 자식을 찾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끝내는 완적처럼 통곡하고 양주처럼 울지 않을 자가 드물 것이다. 비유하면 서울 방내의 자제들이 힘써 농사짓는 것이 귀하다는 말만 듣고서, 역서가 반포되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한겨울에 밭을 갈고 씨를 뿌려 손가락에서 피가 나고 얼굴에 땀이 나도록 한다면, 행은 비록 힘썼다고 하겠지만 지에 있어서는 어떻다 하겠는가? 이는 행을 먼저하고 지를 뒤로하여 끝내 수확을 얻지 못한 것이다.」*
13/04/22
* 연암 박지원, <연암집>, 『위학지방도』 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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