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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기대'에 거는 경제학자들의 망상적 기대 본문
「합리적 기대. 아마 경제학에서 어떤 개념도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기초해 이처럼 분명하게 모든 다른 가능성을 거부하고, 경제적 현상을 평형의 개념 상자 안에 밀어 넣으려는 충동적인 욕망을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욕망은 어떤 과학적 관점에서도 전적으로 기괴하게 느껴지지만 사회학적인, 또는 인간의 행동이라는 관점에서는 그나마 덜 기괴하게 느껴진다. 경제학이 자신들이 과학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를 지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가두어 버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아시의 실험에서 사회적 동조에 대한 압력이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로 짧은 선을 더 긴 것처럼 보게 할 수 있었듯, 경제학자들 역시 실험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합리적 기대 모델이, 실제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고 믿게 되었을 수 있다.
실제로 경제학자들은 상당한 정도의 사회적 압력과 대학원 과정에서의 개념의 세뇌를 받는다. 한 경제학자는 내게 새로운 방법들에 대한 동업자들의 명백한 혐오를 언급하며 "이 방법들 중 상당수는 모든 경제학자들이 처음 경제학을 배울 때 반복해서 배웠던 프리드먼의 경제학 방법론에 대한 오래된 논문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나는 사람들이 이것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는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는 경제학의 지적인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콜랜더(David Colander)와 그의 동료들은 위기가 터지고 나서야 오늘날 경제학적 사고방식에 대해 이렇게 비평했다.
이번 세계적 경제 위기는 어떻게 금융 시스템이 규제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함을 보였다. 또한 경제학자들의 체계적 실패를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지난 30년간 경제학자들은 서로 다른 선택 법칙, 예측 전략의 수정, 사회적 맥락의 변화와 같이 자산과 다른 시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주요 요소들을 무시한 모델들을 수없이 만들어 왔고 여기에 의존해 왔다. 심지어 평범한 관찰자에게도, 이런 모델들이 현실 경제의 실질적인 변화를 충분히 포함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 명백해 보인다. 더욱이 오늘날 학계의 넘쳐 나는 연구 주제에 따라 경제 위기의 본질적인 원인에 대한 연구는 밀려나고 있다. 또한 시스템 위기의 조기 신호나, 위기가 증폭되는 문제를 해결할 잠재적인 방법에 대한 연구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사실 누구든지 학계의 거시 경제학이나 금융에 대한 문헌을 들춰 본다면 "시스템적 위기"라는 단어는 경제학 모델에는 존재하지 않는 다른 세계의 사건처럼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모델은 태생적으로 이런 반복되는 위기를 다루기에 적합한 도구를 지원하지 않는다. 그것이 가장 필요한 시점에 전 세계는 어떤 이론도 없이 어둠 속에서 길을 헤매고 있다. 우리에게 이것은 경제학자들의 체계적 실패이다.
이것은 마치 폴 크루그먼이 말하듯이 경제학자들이 "진실을 위해, 인상적으로 보이는 수학으로 꾸민 아름다운" 실수를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경제학에 사용되는 수학이 모두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루카스의 합리적 기대에 대한 기념비적인 논문에는 다음과 같은 수식이 나온다.
대단하지 않은가? 마치 로마의 해질녘과 같다. 이 진부한 수식은, 독일의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의 이름을 딴 오일러 공식이다. 이 공식은 경제에 포함된 한 개인이 어떻게 가장 최적의 방법으로, 자신의 부를 현재를 위한 소비와 미래를 위한 투자로 나누는지 의미한다. 이 결정은 현재 시장의 상태와 개인의 일어날 법한 미래에 대한 합리적인 (물론) 추측에 의존한다. 수학의 관점에서 이 수식은 실로 매혹적이다. 이 수식에는 많은 기호가 있고 심오하며 완벽해 보인다. 오일러 공식은 수학적 우아함을 실제로 가지고 있으며 물리학과 공학 수학에서 종종 쓰인다.
그러나 경제학에서는 이 공식이 그런 날카로운 가치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은 현실의 경제적 행동과는 전혀 무관한 지적인 놀이일 뿐이며 에벌린 워(Evelyn Waugh)가 현대 철학의 상당 부분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했던 표현을 빌면 "거실에서 즐기는 논리적 궤변"일 뿐인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경제학자 로버트 웨인 클라워(Robert Wayne Clower)가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경제학의 대부분은 이제 현실과 비슷한 어떤 것과도 매우 멀리 떨어져 있으며, 이것은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의 주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을 종종 어렵게 만들었다."
분명히 이것은 현실을 모델링한 것이 전혀 아닐 뿐만 아니라 거의 정신병적인 환상이자 경제학에서 모든 중요한 되먹임과 비선형성을 제거하게 만든 확실히 부정직한 수학의 활용이다. 그 의도는 전적으로 본질적으로 복잡하고 호화로운 문제를 가장 간단하고, 심지어 시시한 것으로 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시티 그룹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뷔터는 합리적 기대에 기반을 둔 거시 모델의 가장 큰 "성취"는 경제학 이론에서 현실의 복잡함을 체계적으로 말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
비록 합리성과 평형에 기반을 둔 경제가 경제학자들의 핵심에 뿌리 깊이 박혀 있고 또 이것을 보존하려는 소수가 필사적으로 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다행히 이런 사고방식은 명백하게 지식사의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운명을 가지고 있으며, 그 시기는 멀지 않았다.」*
15/03/04
* 마크 뷰캐넌, <내일의 경제: 복잡계 과학이 다시 만드는 경제학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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