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합리주의 (4)
모험러의 책방
「하버마스가 힘주어 말했듯이 계몽은 '미완의 기획'이었을 뿐이다. 분명히 1890년대의 주요한 지적 혁신자들은 인간 행동의 비합리적 동기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비논리적인 것, 비문명적인 것, 설명할 수 없는 것의 재발견에 사로잡혀 있었고 거의 심취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비합리주의자'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위험할 만큼 애매하다. 이것은 무의식의 영역에 대한 관용, 심지어 편애까지도 암시한다. 사실은 그 반대가 진실이었다. 1890년대의 사회사상가들은 비합리적인 것을 제거하기 위해 비합리적인 것에 관심을 가졌다. 비합리적인 것에 천착함으로써 그들은 이를 길들여 인간의 건설적인 목표를 위해 사용하려고 했다. 조르주 소렐과 빌프레도 파레토 그리고 에밀 뒤르킴과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혁신자들은..
「(일라이) "현대사회에는 신비가 남아있지 않아. 과학의 세례를 받은 세대가 신비를 모두 죽여버렸지. 합리주의자는 불확실성과 미지를 숙청하고 쫓아냈어. 지난 수백 년간 속 빈 종교가 어떻게 되어 갔는가를 봐. 신은 죽었다 ― 사람들은 말하지. 맞는 말이야. 그는 살해당하고, 암살당했어. ... 그리하여 종교도 사라졌어. 종교는 이제 끝이야. 그리고 우리가 내팽개쳐진 곳을 봐. 끔찍한 하늘 밑에서 외톨이가 되어, 그저 삶의 종말을 기다리고 있잖아. 그저 종말만을."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이 여전히 교회에 가." 티모시가 말했다. "습관적으로. 두려움에서. 사회적 필요에 따라. 그들이 자신의 영혼을 신에게 내보이던가? 네가 신에게 네 영혼을 열어 보였던 적이 언제야, 티모시? 올리버 너는? 네드는? 그리고 ..
「감성을 개발하면 신비주의는 합리주의와 연관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속에 있는 감성을 개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신비적 세계를 말로 형언할 수 없다고 탄식한다고 수운은 한탄하고 있다. 즉 "왜 앎이 없다고 하는가, 왜 앎이 없다고 하는가" 하면서 말이다. 이는 곧 수운의 서학에 대한 탄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탄식은 이원론에 대한 탄식이다.」* 14/12/04 * 김상일, 신비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