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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과 아시아적 생산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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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는 근대적 의미의 자유란 오직 유럽과 일본 봉건제 속의 '자치도시' 또는 '자유도시'에서만 발생했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남송 시대 주희의 사창(社倉) 구상에서 나타나는 자발적 상환 의지의 주체로서의 자영 소농민들 속에서 그러한 의미의 자유와 자율의 싹을 찾아볼 수는 없는 것일까? 유교적 공론장인 향촌의 서원과 사우 등 문인 공동체의 네트워크는 어떤가? 대중유교의 공론장이었던 여러 대중 강학 장소에 모여든 농민과 상인들은 또 어떤가? 비단 유교사회만이 아니다. 이슬람과 불교, 힌두 문명권에도 이러한 의미의 자유와 자율의 공동체가 많았다. 이러한 곳에서는 근대적 의미의 자유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19세기 유럽의 동양관, 그리고 그 대표적인 이론적 표현으로서의 '아시아적 생산양식'은 허구요 착시다. 당시 이미 식민-비식민 근대의 단계에 접어들어 피폐해진 피식민 타자의 상, 그리고 제국적 위치에 선 유럽의 우월적 시각이 창조해낸 스냅숏 몇 장을 가지고 영화 한 편의 전체 모습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 스냅숏에는 식민지로 전락한 이슬람, 불교, 힌두, 유교사회의 퇴락한 왕궁과 헐벗은 인민들의 모습, 그리고 폴리네시아, 멜라네시아, 중앙 아프리카에 잔존하고 있던 신석기 부족들의 몇 장의 사진이 뒤섞여 있다. 이 둘을 섞으면 원시 부족 공동체-아시아적 생산양식이라는 한 세트의 그림, 이미지가 나온다. 이것이 19세기 유럽인들이 창조했던 오리엔트(Orient)의 이미지다.

이 이미지에다 12세기 초엽 북송의 수도인 개봉의 서민 생활상을 그린 '청명상하도'를 놓고 비교해보라. 한편에는 놀라운 회화적 사실성으로 표현된 도시의 사회적 분업과 상업적 활력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무력한 오리엔트와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라는 허구적 이미지가 있다. 이 두 이미지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 것인지 긴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14/07/25

* 김상준,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중층근대와 동아시아 유교문명>에서 봄.

김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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