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와 권태의 치명적 결합
「이런 모든 개탄의 와중에 프랜시스 후쿠야마 자신도 역사의 종착점에 놓인 삶에 관해 극심한 양가감정을 보였다는 점은 잊히곤 한다. 그의 논문에 담긴 우울한 어조의 마지막 문단은 통째로 인용할만한 가치가 있다. 역사의 종언은 매우 슬픈 시간이다. 인정을 구하는 투쟁, 순수하게 추상적인 목적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거는 자세, 대담성·용기·상상력·이상주의를 촉구하는 전 지구적 이데올로기 투쟁은 경제적 이해타산, 끊임없는 기술문제의 해결, 환경에 대한 우려, 까다로운 소비자의 수요 충족에 자리를 내줄 것이다. 탈역사의 시대에는 예술도 철학도 없고 그저 인류 역사를 담은 박물관을 영원히 관리하는 일이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스스로의 내면에서,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서, 역사가 존재했던 시절에 대한 강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