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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장, 명구절

남을 바꿀 것이냐 나를 바꿀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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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경전은 보통 순임금의 부모·형제를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순임금의 아버지(고수)는 성질이 완악하였고, 어머니는 어리석었으며, 이복동생 상은 오만하였다. 순임금은 효도로써 이들을 화목하게 하고, 점차 선으로 나아가게 하여 간악한 데 이르지 않도록 하였다."(성학집요)

왕양명 선생은 이 말을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나는 일전에 부모·형제 등의 골육에게 처신하는 것에 대한 선배 유학자의 주석에 미진한 바가 있음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순임금의 아비는 어리석고 어미는 모질다'고 하는 구절을 보자. 이는 순임금의 아비는 어리석고 어미는 모질며 그 아우인 상은 오만하였지만, 순임금은 효로써 화목을 유지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스스로 선으로 나아갔을 뿐, 그들의 간악함을 고치려 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한 노력이 오래되자 아비인 고수는 결국 순임금을 믿고 따르게 되었으니, 모두 자신의 몸으로 말한 것이다. 만일 그들을 선하게 하려고 재촉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들이 꼭 바르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며, 니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따지는 마음만 먼저 일어났을 것이다."*

즉, 순임금은 남을 바꾸려 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을 바꾸려 했을 뿐이라는 말이다.

주희 선생은 <대학>의 '친민'(백성에게 친근하라)은 잘못 표기된 것으로 '신민'(백성을 새롭게 하라)이 옳다고 말한 바 있다. 양명 선생은 이를 반박하고 원래 표기인 '친민'이 옳다고 주장한 바 있다. 말하자면 주희 선생은 남을 바꾸자는 파고, 양명 선생은 자신을 바꾸자는 파로, 순임금을 해석하는 데서도 이러한 생각의 차이가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먼저 '나 자신'에게 친근하고자 한다.

13/05/03

* 정지욱 옮김, <양명선생유언록>에서 발췌, 각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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