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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과 위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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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돼 있다. 신비로운 건 시간과 공간의 그 결정론적인 성질이 아니다. 진짜 신비로운 건 그럼에도 인간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고뇌하고, 선택하며, 친구를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심지어 이방인을 위해, 때론 자기를 희생한다는 것이다. 테넷과 위쳐, 둘 다 엔딩에서 우로보로스의 원은 완성된다. 필리파가 최후에 깨닫는 바, 운명(destiny)은 왜 희망인가?("Destiny isn’t the judgements of providence, isn’t scrolls written by the hand of a demiurge, isn’t fatalism. Destiny is hope."*)

헤겔이 말했듯, 정신은 자유를 향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종말이라는 운명(fate)에 맞서, 자기 내면에서 인간적인 것을 추구했던 존재들만이 시간과 공간의 지배자 시리를 자유롭게 했다. 

나는 원래 게임을 좀 더 재밌게 즐기려고, 세계관을 좀 더 잘 이해할 겸 소설 위쳐를 읽었다. 근데 소설의 완전한 결말을 목도한 후(그리고 핵심 캐릭터들의 운명을 목도한 후), 과연 게임을 즐길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적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팬픽션을 즐기는 마음으로, 여운을 즐기는 마음으로, 혹은 소설 위쳐가 마지막에 말한 'fairy tale'을 즐기는 마음으로 시도해봐야 겠다. 

테넷과 위쳐, 둘 다 예정된 결말이지만, 둘 다 눈물이 난다는 것, 바로 그 점만이 중요하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정신은 자기의식의 밤 속에 가라앉게 되지만, 사라진 그의 현존은 이 밤 속에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이 지양된 현존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지식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것으로서, 새로운 현존이며 새로운 세계이자 새로운 정신의 형태인 것이다. 이 안에서 정신은 스스럼없이 다시 처음부터 자신의 타자에 의해 매개되어 내용을 갖추기 이전인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출발하여, 그로부터 다시 자신을 키워 나가야 한다. 마치 그가 이전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고, 이전의 정신들의 경험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배운 바가 없기나 한 것처럼 말이다.」

- 헤겔, 『정신현상학』 중

* 안제이 사프콥스키, 위쳐, 호수의 여인. Sapkowski, Andrzej. The Lady of the Lake (The Witcher Book 5). Kindle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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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리뷰, 책 발췌, 낭독, 잡문 등을 남기는 온라인 책방. 유튜브 채널 '모험러의 책방'과 ′모험러의 어드벤처′(게임)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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