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러의 책방

상상의 세계는 존재하는 세계의 일부 본문

명문장, 명구절

상상의 세계는 존재하는 세계의 일부

모험러

「많은 사람이 즐겨 읽는 소설은 그 자체로 하나의 허구적인 세계를 묘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세계가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아니라고 느낀다. 그러나 그 세계는 아주 그럴듯해서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인 것 같기도 하고, 언젠가 이 세계 어딘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법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이야기의 터전이 되고 있는 소설 속 세계는 우리 주변의 생활세계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세계는 실제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이 묘사해낸 가상의 세계일 뿐이다. 말하자면, 작가와 독자가 공유하는 관념의 세계일 뿐이다. 물론 이렇게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구성된 세계라고 해서 그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소설이 그 어떤 윤리 교과서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소설이 많은 사람에게 아무리 큰 가르침을 준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참된' 세계는 아닌 것만 같다. 무엇보다 그것은 상상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상상의 세계'라는 표현은 통상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해석되어왔다. 그 때문에 여태껏 그런 상상의 세계들은 학문적 탐구의 영역에서 배제되었다.


그런데 이런 상상의 세계 혹은 허구적인 세계가 우리의 건전한 '세계 이해'의 발목을 잡아온 것 또한 사실이다. 다음과 같은 질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상의 세계가 모종의 기능을, 그것도 제법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면, 그것은 왜 '존재하는 세계'의 범주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가? 다시 말해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 어떻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가? 수학적 대상들이 실재한다고 믿는 플라톤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철학적 입장에 대해 반대하는 건전한 상식의 소유자들에게 가졌던 의문과 비슷하게 소설의 세계가 단순한 허구적인 세계라고 말해버리는 것은 우리의 직관에 묘한 균열을 일으킨다. 망상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괴롭히는 허구의 세계와 건전한 존재론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상상하는 세계 사이의 차이가 그리 선명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 두 세계 사이에 어떤 본질적인 차이는 없는 것만 같다. 다만 차이, 혹은 문제라면 그런 상상의 세계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중요한 것은 상상의 세계 자체가 아니라, 그 세계의 '주인'들이 견지하고 있는 태도의 차이일 뿐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세계들은 단지 그런 세계를 상상한 창작자의 관념들이 밖으로 투사된 것이므로, 탐구의 대상은 그런 세계가 아니라 창작자의 관념이었다. 그리고 그런 한에서 그런 세계들은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관념적 구성물이며, 따라서 만약 예술적 창작과 관련해서 어떤 진리가 말해질 수 있다면, 그것은 과학적 인식론에서 말하는 진리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진리임에 틀림없다. 때문에 예술적 창작물 속에서 표현되는 세계는 학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 역시 암묵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상상의 세계라는 이유로 진리를 말하는 담론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며 그것은 지나친 홀대가 아닐까?


… 정리하자면, 근대적 합리성이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과 가상 사이의 이분법은 이제 효력을 다한 듯 보인다. 대안적 세계들은 우리 몸이 담고 있는 세계와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의를 과시한다.」*


16/05/25


* 박승억, <학문의 진화: 학문 개념의 변화와 새로운 형이상학>



모험러의 책방

서평, 리뷰, 책 발췌, 낭독, 잡문 등을 남기는 온라인 책방. 유튜브 채널 '모험러의 책방'과 ′모험러의 어드벤처′(게임) 운영 중.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