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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 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희열은 단죄당하며, 공포와 죄의식은 상호 유발 관계에 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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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 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희열은 단죄당하며, 공포와 죄의식은 상호 유발 관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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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토파고이족이 건넨 꽃의 유혹이 오뒷세우스의 동료들에게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꽃을 먹고도 죽지 않았지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자신들이 노동과 생산으로 무의미하게 전진해야만 한다는 것을 잊었다. 그들을 심판하고 사슬로 묶어 끌고 온 오뒷세우스는 모든 희열을 단죄하는 현실 원칙에 입각해 있다. 본능의 억압, 땅에서 재화를 끌어내기 위한 육체의 수고를 거치지 않는 희열, 감성적 속성을 체제 권력에 유리한 추상적 가치로 변화시키지 않는 희열은 단죄당한다. 불충한 부하들과 로토파고이족의 명백하고 우호적인 관계는 아무 콤플렉스 없이 자연스럽게 땅의 소산들을 바라는 마음이 드러남으로써 재건되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어머니 대지의 조직적 개발과 계몽되지 않은 야생의 희열에 대한 단죄가 하나로 수렴하는 양상을 비판한다. 여기서 현실 적응이라는 정신분석학의 과제와 그리스도교 도덕이 공유하는 금욕에 대한 비판이 아주 분명히 드러난다. 그리스도교에서나 정신분석학에서나 견고해진 개인의 죄의식은 전체, 즉 사회의 특권층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프로이트의 논리를 뒤엎는다. 욕망을 억압하거나 승화해야 하는 이유는 욕망의 관심이 사회적으로 위험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집단이 억압의 에너지로 돌아가기 때문에 집단은 욕망을 사악한 것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공포와 죄의식은 상호 유발 관계에 있다. 따라서 충실한 부하들의 미덕은 일종의 변신, 즉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변한 것이리라. 그러나 권력은 유지되기 위하여 교활한 협잡을 필요로 하고, 거세된 욕망의 폭력은 자신이 오염되었음을 입증해 주는 것에게로 돌아가지 않고 욕망이 원하는 것에게 돌아갈 것이다. 로토파고이족이 건넨 꽃이 악의 원흉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15/12/10


* 클로디 아멜, & 프레데릭 코셰. (2014).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오뒷세이아. (이세진, Trans.). 파주: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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