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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게임

모험러

"『푸코의 진자』는 자료를 찾고 쓰는 데 8년이 걸렸지요. 제가 뭘 하는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 때문에 거의 10년간 저 자신의 세계 속에서 살았던 것 같네요. 밖으로 나가서 차와 나무를 보고는 중얼거립니다. 아, 이것도 내 이야기와 연결될 수 있겠구나라고요. 그런 식으로 제 이야기가 매일매일 자라납니다. 그리고 제가 하는 모든 일, 삶의 작은 파편들, 모든 대화들이 아이디어를 제공해줍니다. 그러고나서 제가 소설에서 등장시킨 장소인 템플기사단이 있었던 프랑스와 포루투칼의 실제 지역을 방문했답니다. 그러면 소설 쓰기는 제가 전사가 되어 일종의 마법의 왕국에 들어가는 비디오게임처럼 됩니다. 단지 비디오게임에서는 완전히 게임에 빠져 도취되는 반면에, 소설을 쓸 때는 언제나 달리는 기관차에서 뛰어내리는 비판적인 순간이 존재하지요. 물론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올라타야 하지만요."*


- 움베르토 에코


"매 시즌마다 소설의 종말, 문학의 종말, 미국에서의 문해력의 종말 등에 대한 기사가 나오지요. 사람들이 책을 더 이상 안 읽는다! 십 대는 비디오게임만 한다! 사실은 전 세계적으로 책과 젊은이들로 가득한 가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인간 역사상 요즘처럼 이렇게 많은 책과 서점이 있고, 이렇게도 많은 젊은이들이 책방에 가서 책을 산 적이 한 번도 없었지요."*


- 움베르토 에코


"사람들은 제가 야심가라고 하는데, 그 말은 어쩌면 맞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제가 하는 일을 사랑해요.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책상에 앉아 일하는 걸 즐긴답니다. 본질적으로는 일이지만, 재미도 있고 게임이기도 해요."*


- 오르한 파묵


"『모비딕』이나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는 건 좋은 일이지만,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그런 책들을 읽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소설 자체도 엄청나게 변했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바로 사로잡아서 책에 끌어들여야 하거든요. 현대소설 작가들은 다른 분야, 즉 재즈나 비디오게임 같은 것들의 기술을 사용하지요. 저는 요즘 비디오게임이 소설과 가장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인터뷰어: 비디오게임요?) 


그렇습니다. 저 자신은 비디오게임을 하지 않습니다만 소설과의 유사성을 느껴요. 때때로 글을 쓸 때 비디오게임 제작자이면서 동시에 플레이어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제가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지금 또 그 안에서 게임을 하는 거죠. 왼손이 오른손이 하는 것을 모르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일종의 거리감이 존재해요. 분열된 느낌이죠."*


- 무라카미 하루키


"대개는 소설이 진행되면서 이야기가 계속 바뀌어 가지요. 출판된 제 책 중 어떤 것도 구상한 대로 만들어진 것은 없습니다. 처음에 구상했던 등장인물과 에피소드는 사라지고, 다른 인물과 에피소드가 발전해가기도 해요. 그렇게 해가는 과정에서 책이 완성되는 겁니다. 일종의 모험이라고나 할까요."*


- 폴 오스터


"노발리스는 꿈이 '우리를 삶의 단조로움으로부터 보호해준다.' 그리고 '꿈의 게임이 주는 기쁨은 우리를 진지함에서부터 해방시켜준다.'라고 말했습니다. ... 100년이 지난 후 노발리스의 야심을 실현한 인물이 카프카랍니다. 카프카의 소설은 꿈과 현실의 결합입니다. 즉, 꿈도 현실도 아니지요. 카프카는 무엇보다도 미학적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미학적인 기적이지요. 물론 누구도 카프카가 이룬 것을 반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카프카나 노발리스와 마찬가지로 꿈과 꿈의 상상력을 소설에 가져오고 싶습니다."*


- 밀란 쿤데라


"(인터뷰어: 소설이라는 장르는 오락이 아닌데 왜 소극 형식을 소설에 채택하신 거죠?)


소설은 오락이에요. 프랑스 사람들이 어째서 오락을 경멸하는지 전혀 이해가 안 가는군요. 어째서 프랑스인들은 '오락'이라는 말을 그다지도 부끄러워하는 거죠? 그 사람들은 재미있다는 오명을 받느니 차라리 지루한 사람이 되는 쪽을 택할 거예요. 그 사람들은 차라리 달콤하고 거짓된 장식인 키치와 사랑에 빠지는 쪽을 선택할 겁니다. ... 위대한 유럽 소설들은 오락으로 출발했고, 모든 진정한 소설가들은 그 점을 그리워해요. 실상 위대한 오락물들의 주제는 심각할 정도로 진지해요. 세르반테스를 생각해보세요! 『이별의 왈츠』에서 던지는 질문은 '인간은 지구상에 살 가치가 있는가?' 또는 우리가 '지구를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것입니다. 제가 평생 추구해온 야심은 가장 심각한 질문을 가장 가벼운 형식으로 던지는 것입니다. 이건 순전히 미학적인 야심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경박한 형식과 진지한 주제는 우리 삶의 드라마(침대에서 발생하는 드라마뿐 아니라 역사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진행되는 드라마까지도요.)가 갖는 진실을 즉각적으로 드러내주고, 그 드라마들의 끔찍한 하찮음과 무의미함을 드러내 보여주거든요. 우리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경험하는 거지요."*


- 밀란 쿤데라 


"그러나 예술은 또 한편으로는 우월한 형태의 오락입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잘못되었나요?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십 대 때, 스트린드베리의 희곡을 읽고, 막스 프리슈의 소설을 읽고, 릴케의 시를 읽고, 버르토크의 음악을 밤새도록 듣고, 시스티나 성당과 미켈란젤로에 대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서, 매번 내 삶이 이런 경험들 때문에 바뀌어야 한다고 느끼고, 내 삶이 이런 경험들에 영향을 받고 바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 기억나네요. 제가 바뀌어서 다른 사람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곧 제 삶이 결국에는 전혀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답니다. ... 예술은 사치이고 그것은 저 자신이나 제 삶을 바꾸지 않을 거라는 거죠. 예술이 어떤 일도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는 걸 어렵게 깨달았답니다. ... 


좋은 소설은 부분적으로는 한 세상의 소식을 다른 세상으로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그 목적 자체로 훌륭해요. 하지만 소설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거나 어떤 사람의 정치적인 입장을 바꾸거나 혹은 정치체제 자체를 바꾸거나 고래나 레드우드 나무를 구하거나 하는 것은 못합니다. 당신이 이런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말이에요. 그리고 소설은 이런 어떤 것과도 관계가 없다고 생각해요. 소설은 뭔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소설은 단지 그것에서 얻는 강렬한 즐거움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뭔가 지속적이고 오래가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어떤 것을 읽는 데서 오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지요. 아무리 희미할지라도 계속해서 불타오르는 이런 불꽃을 쏘아 올리는 어떤 것이랍니다."*


- 레이먼드 카버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저는 꿈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영감의 가장 큰 근원은 인생 자체이며 꿈은 인생이란 격류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글에서 진실한 것은 제가 꿈의 여러 가지 개념과 해석에 매우 관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저는 일반적으로 꿈을 삶의 부분으로 보지만, 현실은 훨씬 풍요롭습니다. 하지만 제가 매우 빈한한 꿈만 꾸었는지도 모르지요."*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문학은 시뮬레이션이 아니다. 오히려 문학은 시뮬레이션에 대한 안티로서 존재한다. ... 내가 문제삼는 '작가'는 바로 이 지점에 서 있다. 세월이 지나면 게임은 영화보다도 위력적으로 소설독자들을 장악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게임인 한, 게임을 표방하는 한 넘어설 수 없는 한계 지점, 그 너머에 '작가'들이 게릴라가 되어 유격전을 펼치고 있을 것이다."**


- 김영하, 「흔들림과 집, 나의 소설쓰기2」, 『우리 문학이 가지 않은 길』


15/02/28


* 파리 리뷰 인터뷰, <작가란 무엇인가: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 김형수,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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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리뷰, 책 발췌, 낭독, 잡문 등을 남기는 온라인 책방. 유튜브 채널 '모험러의 책방'과 ′모험러의 어드벤처′(게임)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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